자연의 신비를 노래하는 마음 풍경화

화가 강애자의 ‘내면 풍경’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통해 드러나는 마음의 떨림을 밝고 따스한 추상적 언어로 노래한 ‘마음 풍경화’다. 더 정확하게는 ‘마음의 산수화(山水畵)’ 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의 그림에는 강렬한 햇살,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바위와 나무, 풀잎과 들꽃, 부드러운 능선들, 그 사이를 지나다니는 바람 등이 시적 (詩的) 으로 표현된다. 화면을 채우고 있는 것은 자연의 빛나는 색채와 노랫소리, 두런두런 나누는 정겨운 대화, 풋풋한 냄새들이다. 작지만 소중한 그것들은 ‘자연사랑’ 의 마음에서 우러난 ‘생명의 떨림’ 이다. 자연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사생 (寫生) 하는 실경산수 (實景山水) 가 아니라, 자연에서 받은 감동을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잘 익혀서 그림으로 드러낸다.

자연을 보는 화가 강애자의 눈길은 그가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것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화 또는 동양화의 세계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좋은 열쇠가 된다. 비록 서양화의 재료로 서양적인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바탕에는 동양 그림의 마음이 배어 있다. 단순히 재료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을 보는 시각과 마음의 문제이다.


<Inscape IX-2, 2003, 36" x 36">

그의 눈길은 동양의 전통적인 산수화의 기본 정신에 뿌리를 대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읽고, 거기에 작가의 마음과 생각을 담아내려는 자세, 이상향을 꿈꾸며 자연과 하나로 녹아드는 마음, 무심하게 지나쳐 버리기 쉬운 아주 하찮은 작은 부분을 통해 전체를 이야기하는 섬세한 시선 등등 … 작은 것을 통해서 큰 세계를 보려는 그의 노력은 작은 그림들을 모아서 큰 화면을 구성하는 ‘모듬그림’ 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작은 노랫소리들이 모여서 합창이 되는 구조는 말하자면 동양적 시선과 서양적 방법론의 조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풍경화는 ‘마음의 산수화’ 인 셈이다. 그런 바탕에서 서양화가들과는 다른 그림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출신 화가 강애자의 장점이자, 가능성이 된다. 동양의 정신과 그림을 익힌 한국의 화가가 신비로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캘리포니아에서 살며 작업을 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며 가능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의 모습은 물론 지역에 따라서, 계절에 따라서 저마다 다르다. 미국처럼 광활하고 변화무쌍한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캘리포니아의 해변 풍경, 중부 지방의 드넓은 광야, 요세미티, 데스 밸리 … 어느 곳 한 곳도 같은 표정이 아니다. 그 다양함을 충실하게 담기 위해 강애자의 화면도 거침없이 다양하게 변화한다. 때로는 거칠고 두터운 마티에르로, 때로는 동양적인 정서로 …

자신이 접하고 감동을 받은 자연에 꼭 알맞는 표현기법을 찾으려는 것, 그런 작업을 통해서 자연의 신비와 창조주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노래하려는 것,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열어두는 것… 이것이 강애자가 요사이 취하고 있는 작가적 태도인 것 같다. 한국적인 조형 요소를 잘 살린 초기 작품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다양한 조형언어에 도전하는 것도 아마 그런 까닭에서 일 것이다.

대개의 화가들이 굳어져 있는 자신의 틀을 가지고 자연을 파악하고 해석하려 들지만, 강애자는 자연 앞에 자신을 완전히 열어두려 애쓴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느끼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직관적 통찰과 순발력에 기대어 그림을 완성한다. 그런 자세이기 때문에 그리는 자연에 따라 표현 기법도 다양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새 작품을 시작할 때, 어떤 형태로 작품이 완성될 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잡한 퍼즐을 즐기듯 작업을 진행시킬 뿐이죠.” 라는 작가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다양성을 보는 것이 흥미롭다. 작가 자신도 아직은 젊으니까 앞으로 당분간은 그리고 싶은 대로 마음껏 실험해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작가 세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그림들이 모여 하나의 큰 세계를 이루어내듯 …

장소현 (극작가,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