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소중한 것은 ..."  

지난 토요일 오후에 씨미밸리에 사는 오빠에게서 저녁 식사나 함께 하자는 전화가 걸려 왔다. 바쁘다는 아이들을 집에 남겨두고 우리 부부만 호젓하게 다녀오려고 집을 나섰는데, 씨미밸리의 산언저리가 온통 불구덩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간신히 저녁 식사를 끝내고 돌아올때는, 프리웨이 주변까지 내려온 불덩이를 지나야했다.

일요일 오후부터는 TV앞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불소식에 목을 매었다. 미국에 이민와서 10년동안 살았던 씨미밸리는 태어나서 25년이나 살았던 서울보다 내게는 정겹고, 불난리에 걱정되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 레이건 도서관 인근에 사는 오빠네, 언제 화마에 먹혀들어갈지 모르는 인디안 힐스, 7년이나 다녔던 미국교회 식구들 불바다로 변해가는 씨미밸리를 보면서 우리 가족은 목이 타들고 심장이 멈추는 느낌속에 TV를 지켜봐야 했다.

시월의 이상고온과 산타애나 바람을 타고 동진을 계속한 산불은 월요일 오후부터는 내가 살고 있는 포터랜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 자신을 걱정해야 될 처지가 됐다. 남편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일요일 오후부터 TV 앞을 떠나지 못했고, 월요일 아침부터는 2시간마다 밸리가 한눈에 보이는 산위로 올라가서 산불이 타오는 상황을 점검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산에서 불과 몇십 미터거리로 높이 솓아오르는 불기둥이 바람에 업히기만하면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방송에서는 계속 집을 떠날 것을 권유했고, 우리도 이웃들과 같이 마지막 준비를 시작했다. 남편은 우리에게 같은 크기의 이삿짐 상자를 나눠주면서 각자에게 소중한 것을 챙기자고 했다. 딸아이는 사진 앨범, 10 여년을 계속 써온 일기장, SAT 자료집, 옷가지 등을 상자에 넣었다. 남편은 집안 서류와 software CD, 옷가지를 챙겼다. 아들은 테니스 라켓, 책, 첼로 악보, 스켓치 북, 음악CD, 아기자기한 컬렉션, 옷가지 등을 넣었다. 여러 해 살던 집을 하루아침에 산불에 빼았기고 결혼 사진 한장 챙기지 못한 부부를 TV에서 보면서, 10년째 살고 있는 이집이 마지막일수도 있고, 우리의 20 년 생활 밑천이 화염속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생각이 들었다. 짐을 넣을 상자는 제법 컸지만, 아끼는 가구를 넣을 수도 없었고, 큰 마음 먹고 장만한 무거운 그릇을 넣을 수도 없었다.

바지런한 아이들과 남편은 자기 몫의 상자를 가득 채우고 SUV에 이불까지 싣고는 내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내 상자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민끝에 집안 벽에 걸려 있는 내 그림들을 옮기자고 했더니 남편은 두말않고 그림을 떼기 시작했다. SUV에 가득 싣고 스튜디오로 가면서 이래도 되는 건가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서 자정까지 불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나와 들은 2, 3 분안에 집을 떠날 수 있도록 옷을 입은 채 눈을 붙였지만, 남편은 잠시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채 불침범을 섰다.

화요일 새벽부터는 수많은 헬리콥터에서 퍼부어대는 물과 풍향의 변화로 산불은 스티븐슨 랜치로 진로를 바꾸었고, 우리가 사는 포터랜치는 불바다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청전 이상범은 6.25 때 피난을 가면서 미술용품과 그림만을 챙겨서 가족들이 은근히 섭섭해 했었단다. 그의 손자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화가가 당연하지 라고 생각했었다. 20 년이 지난 지금, 벽에 걸린 그림만 먼저 챙기려는 나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2003 년 11월    미주중앙일보  "화재의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