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도

딸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피아노 음악은 내 생활의 일부가 되기 시작했다. 허름한 중고 피아노를 두들기던 네 살짜리의 띵똥땡이 십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그랜드 피아노에서 퍼저나오는 섬세하고 웅장한 소나타와 콘체르토로까지 발전했다. 거의 매일같이 피아노 소리를 들어온 나는 이제는 모짜르트나 쇼팽의 어려운 곡을 들어도 건반위를 오가는 피아니스트의 섬세한 손놀림을 마음속에 그리며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할 정도가 되었다.

몇달 전에 Natural History 박물관을 찾아 멕시코 민속미술전을 관람했다. 흙으로 만든 눈이 이쁜 멕시코 미인들도 있었고, 멕시코의 국민적 우상인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흙으로 빚고 채색해 재현한 것도 있었다. 작품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어른과 어린아이, 흑인과 백인, 히스패닉등 많은 사람들로 전시장안은 초만원이었다. 얼마 전 에는LA 뮤직센터를 찾아LA 오페라단이 공연한 “나비부인” 을 관람했다. 원어로 부르는 가사의 내용은 이해못해도 가수들의 아름다운 노래 선율에 오페라의 진수를 맛보는 것같아 좋았다.

언제부턴가 내게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찾을 때에 우리 한인들이 얼마나 왔나 둘러보는 습관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유명한 곳에는 한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LA 의 게리 센터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턴 미술관에도 한인들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는다. 지난 1 월에 방문한 방콕의 대궁전(Grand Palace) 에는 한국인 방문객이 타이랜드 내국인을 앞지를 정도로 많아 보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몇 곳을 제외하면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 한인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3 천명의 관람객들이 열광한 LA 뮤직센터나 여러 인종이 문전성시를 이룬 Natural History 박물관에서 만난 한인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LA 에는 좋은 문화시설이 많다. 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도 많고, 캘리포니아나 미국의 역사를 조형물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다이내솔이나, 화석, 또는 비행기만을 전시하는 곳도 있고, 서부 개척시대에 사용된 수백 가지의 총기류와 마차를 잘 정리해서 전시하는 곳도 있다. 전시장마다 세계적인 명품들이 즐비할 뿐만 아니라, 구내의 카페테리아는 분위기도 괜찮고 별 부담없이 와인이나 가벼운 식사도 즐길수 있다. 몇 곳의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음악공연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식사도 하고, 좋은 공연도 보면서 주말을 가족과 미술관에서 보낸다면, 가족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친구나 연인을 미술관 카페에서 만나, 와인을 곁들여 식사도 하고 전시품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진다면, 마음 속에 진한 뿌듯함이 남을 것이다.

우리 한국 사람의 부지런함과 열정은 세계가 인정한다. 무엇을 하던지 최선을 다한다. 이백여 나라가 자웅을 다투는 올림픽에서 한국은 9 위에 마크됐다. 삼성전자는 세계의 메모리 시장을 석권하고 있고, 현대자동차는 세계 6 위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의 성공담도 유태인에 비교되고 있다. 하지만 사십대의 사망률 또한 세계 수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눈을 돌려 문화에 관심을 갖고 생활에 여유를 찾을 때가 된 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 식당을 찾아 가듯이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즐겨 찾는 한인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2004년 8월 미주중앙일보 "여자의 세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