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랜드 전시여행기"

<타이 문화부 장차관과 양국화가들>

지난 1월초에 방콕과 천부리 두 곳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석하기 위해2 주간 타일랜드를 방문했다. 한 겨울의 자정 가까이 공항에 도착했지만, 방콕의 밤하늘은 숨쉬기가 힘들정도로 공해가 심했고, 기온도 높아 티셔쓰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숙소로 가는 동안 차창 너머로 다가오는 방콕의 모습은 70년대의 서울과 같이 급격히 비대해지는 몸집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듯 보였다.

이번 전시는 미국의 중견화가들과 타이 정상의 국민화가(National Artist)들이 펼치는 미술전 이었다. 타일랜드는 정부가 매년 한 명의 화가를 국민화가로 선정해서 국왕이 직접 시상을 하고 평생동안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그들의 위상은 대단했다. 대학교수들을 주축으로 하는 미국화가들은 이들과 견줄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불교문화에 젖어온 타이 사람들에게 미국의 세련된 현대미술은 인기가 있었다. 타이 언론은 타이 최고의 화가들과 미국 화가들이 함께 엮는 전시회에 많은 관심을 보여, 신문 TV와 여러 차례 인터뷰가 있었다

작품은 타일랜드 국립문화원과 방콕에서 동쪽으로 두시간 거리에 있는 부파라 대학의 미술관에 나뉘어 전시가 되었다. 국립문화원에서 열린 리셉션에 참석한 문화부 장관은 하버드 법대 출신으로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 보였다. 그는 미국에서 건너온 작품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화가들과 돌아가며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고위 관료들은 연이어 인근 호텔에서 열린 만찬이 끝날때까지 마치 오랜 친구같이 우리의 말벗이 되어주었다. 부라파 대학에서도 성대한 리셉션을 준비하였는데, 만찬이 진행되는 도중에 음대의 교수와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악기를 연주해 분위기를 돋우기도 하였다


<부라파 대학생들과>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방콕의 오리엔탈 호텔을 찾아 보았다. 호텔 문을 들어서자 은근히 다가오는 이름모를 꽃향기가 식당가와 아케이드, 호텔의 복도로 이어졌고, 전통의상을 입은  미남미녀 직원들은 자연스러운 미소와 세련된 매너, 능숙한 영어로 우리를 사로잡았다. 아름다운 차오프라야 강가에 접해있는 테라스는 해가 지고 곳곳의 램프에 불이 들어오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타일랜드의 전통무용을 감상하면서 먹는 저녁식사는 고급스러운 타이 실내장식과 정갈한 음식, 정중한 서비스가 조화를 잘 이루었다.

타일랜드는 물가는 싸지만 일반 서민들은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대중식당에서 먹는 복음밥이나 국수류가 75 센트정도이고 택시로 방콕 시내를 한 시간을 누벼도 4 불이 나오질 않는다. 하지만 이곳 오렌지족에게 인기가 있는 스타벅스 커피나 KFC 치킨은 미국보다도 오히려 비쌌다.

대중식당은 처음에는 아무래도 불결해 보이고 타이 특유의 향료가 입에 맞지 않아 타일랜드가 초행인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방콕 근교에 있는 유서깊은 도자기 지역을 방문했을 때, 안내하는 문화부 직원들이 길가에서 파는 스낵류를 많이 사서는 허름한 식당에서 점심식사와 함께 풀어 놓았다. 선지와 돼지고기 껍데기와 비게를 복은 음식, 생계란으로 즉석에서 만든 요굴트, 잔 새우를 먼지나는 길에서 튀긴 음식 등, 타이 사람들에게는 별미겠지만 나는 입에 넣고 삼킬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을 여러 차례 여행한 경험이 있는 다른 화가들은 맛있다고 하면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타완의 작업실에서>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은 문화부 직원의 안내로 방콕 시내를 관광하거나 지방의 문화유적지를 방문했다. 방콕의 동물농장에 있는 코끼리는 특별히 제작된 자전거를 타는 묘기도 보여 주고, 디스코 음악에 맞추어 두 다리를 들고 엉덩이를 흔들며 춤도 추었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불교 신자이고 절이 3만여개가 넘는 나라이다보니 우리가 방문한 곳도 유서 깊은 불교 사찰이 많았다. 왕이나 지방의 부호가 오랜 세월에 걸쳐 건축한 절에는 하늘 높이 뻗은 체리(탑)와 웅장한 불당, 그리고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 백개나 되는 불상이 있었다. 한국이나 일본의 절에 비해 건축물이나 조각물의 규모가 매우 컸고, 거대한 체리나 불상에 금을 입히거나 아예 금으로 만든것도 많았다. 가정집이나 식당, 관공서 어디를 가도 불상은 쉽게 볼 수 있었지만, 2 주동안 타일랜드를 여행하면서 교회의 십자가는 한 차례밖에 보지 못했다.

여행을 하면서 유명한 화가들의 스튜디오도 방문하였다. 이번 전시에 참가한 국민화가 타원은 타일랜드 북부의 칭라이에 자기의 아트 타운을 갖고 있었다. 길이가 3 km나 되는 그의 타운에는 크고 작은 건물이 50 여채나 있었다. 타이의 전통양식이나 서구의 건축양식으로 지은 건물의 외양도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는 물소 가죽과 뿔, 악어 가죽, 갖가지 동물뼈로 만든 기기묘묘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업실에 놓인 초대형 철제 캔바스는 그가 지게차를 타고 올라가 낛시대에 붓을 매달어 작업을 한다고 하였다. 유럽에서 미술을 공부한 타완은 영어와 독일어가 유창하고 말에 거침이 없는 카리스마적 화가였다. 30 여년간 유럽의 부호들에게 그림을 팔아 자신의 타운을 건설했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우리와 함께 전시한 화가들의 친구들이 파티를 열어주었다. 차오프라야 강을 유람하는 배를 세내어 타이의 고도인 아유타야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 주기도 했고, 미술관에서 근사한 가든 파티를 열어 주기도 했다. LA의 헌팅톤 도서관과 같은 대저택에 사는 부자들이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이들의 집에는 넓은 정원과 야외 공연장, 수 백명이 모임을 가질 수 있는 홀, 실내외 식당, 여러 채의 게스트 하우스등이 있었다. 불교사원의 건축양식을 현대화시킨 찰랑차이에 집에 초대되었을 때는,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젋은 남녀가 우리 앞에 꽃을 뿌리고 타이 음악을 연주하며 맞아 주었다. 무대에서는 전통음악에 맞춰 아름다운 미희들의 무용이 이어졌고, 이십여명이 서브하는 여러 풋코트에는 온갖 진기한 음식들이 손님들의 구미를 당겼다. 파티가 끝날무렵에는 옆의 계곡에서 폭죽이 터져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 놓았다.


<카몬의 60회 생일 기념공연후에>

타일랜드 북부 지방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우리 일행을 태운 소형버스는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밤 열시가 넘어서야 방콕의 호텔에 도착했다. 그동안 정들었던 문화부 직원들과 기약없는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방에서 짐을 꾸리다보니 타이 화가에게서 받은 선물 보따리를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이 생각났다. 이미 자정이 가까웠고, 다음날 새벽에 공항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아까웠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방콕에서의 마지막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고 새벽에 쳌아웃을 하는 데, 호텔 직원이 자정이 넘어 버스 운전사가 놓고 갔다며 선물 보따리를 건네 주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며칠동안 미소만 주고 받았던 렌트버스 운전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러날을 함께 여행하면서도 말한마디 나눠보지 않았고, 다시 보지도 않을 외국인 손님을 위해 버스운전사는 회사차고와 호텔을 자정녁에 오갔을 것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미소 띤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타이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품어 보았다.

2004년 2월 Valley Korean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