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두 얼굴

열 살도 채 안되는 학생들이 파카소의 작품이 즐비한 미술관을 돌아다니고, 미술책에서 보았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을 언제든지 마주할 수 있는 곳,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 모자에 장갑까지 착용하고 정장차림의 우아한 모습으로 공원을 산책하는 곳, 파리.... 파리는 분명 매력적인 도시이다.

하지만 파리라고 해서 모두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으레 하는 이야기가 “소매치기 조심”이다. 배낭을 메고 유럽을 여행한다는 어느 대학생은 “선생님, 저도 당했어요. 소매치기 조심하세요!”라고 내게 신신당부를 하였다. 파리에서는 카메라, 가방, 심지어 여권까지 잃어 버리고 난감해하는 여행객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베르사이유궁>

태양왕 루이 14세가 지었다는 꿈의 궁전, 화려함의 극치라는 베르사이유 궁전은 많을 때는 오천여 명이나 되는 귀족과 하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왕이 사용하는 화장실외에는 별도의 화장실을 만들지 않아 지체높은 귀족들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궁궐의 구석 벽이나 바닥 또는 정원의 풀숲이나 나무 밑을 이용했다고 한다. 지금도 관광객들은 궁전 내부의 관람이 끝날 때까지는 볼 일을 참아야 하나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밖에 나와 줄을 서서 화장실을 이용한 후에 다시 궁안으로 들어와 관람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사정은 베르사이유 궁전 뿐 아니라 시내 곳곳에서 겪는 일이다.

프랑스인처럼 먹는 일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그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보통 애피타이져로 시작해서 와인을 곁들인 본식을 하고 치즈로 입가심을 한 후에 과일로 만든 파이류로 디져트를 먹은후 독약 같은 에스프레소 커피로 두 시간의 점심 시간을 즐긴다. 물론 이 보다 간단하게 샐러드 한 접시와 커피 한 잔으로 끝을 내거나 바게뜨 샌드위치를 손에 들고 공원 벤치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 보면 여유 있어 보이고, 멋갈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 미국 같이 음식이 푸짐하지도 않고, 가격은 오히려 두 세 배나 된다. 그래서 파리에서는 사람을 만나도 선뜻 함께 식사하자는 이야기를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랑은 함께, 계산은 따로”라는 썰렁한 사랑 방정식이 파리의 젊은이들 사이에 통용되는지도 모르겠다.

파리를 여행하다 보면, 프랑스 사람들이 무표정하고 상냥하지 않은 것을 느끼지만 특히 영어를 쓰는 미국인들에게는 매우 불친절한 것을 알게 된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도 아예 무시하고 불어로만 이야기를 하고, 마치 적대국 사람을 대하듯 불친절하게 대하는 경우도 있어, 많은 미국인 관광객들이 곤혹스러워 한다. 그들의 문화적 자신감과 우월감이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파리는 도시의 역사만큼이나 건물들의 역사도 오래되었다. 문화적 의미가 깊이 새겨 있는 문양들과 주변의 조각물들이 흥미로와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공간은 매우 협소하고 샤워시설이 없는 곳도 많다. 내가 묵었던 고급 주택가의 외교관 아파트에도 냉방시설은 되어 있지 않았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 외관은 고풍스럽고 운치있어 보이지만 실생활에 있어서는 불편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한다. 왠지 파리는 멋있기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늘 명암이 교차한다. LA에서 온 화가라고 나를 소개하면, 이곳을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그들의 눈빛을 만나게 된다. 멋지게 산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어디에 살던지 있는 곳에서 충분히 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사는 LA도 참 괜찮은 곳이다. “남의 떡이 커보이지만, 사실 내 떡이 크다”고 믿으며 살고 싶다.

2004년 8월 미주중앙일보 "여자의 세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