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셈법

저녁 식사 준비도 까맣게 잊고 작업하는 나를 대신해서 가끔씩 반찬과 찌게를 가져다 우리 가족들을 먹인 고마운 이웃이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밤늦게 돌아오는 화가의 미안한 마음을 여러차례 덜어 주었다. 얼마 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는 데, 거듭되는 사업의 실패로 넉넉했던 살림이 주저않아, 아파트 렌트비를 내지 못 해 나에게까지 전화가 왔다. 그 때 맛있게 먹었던 사랑이 듬북 담긴 국과 반찬들이 떠오르면서도 되돌려 받기 힘들거라는 생각에 순간 망설여졌다. 마침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이왕이면 갖다주자고 흔쾌히 제안을 해서 두 시간여 거리를 심야 데이트 한적이 있었다.

여러 해 전 딸 아이가 병원에서 진통제로 버티며 매우 힘들어 할 때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학을 다니던 조카에게서 묵직한 소포가 overnight 으로 병실에 배달되었다. 열어보니 그 속에는 캔퍼스에서 꺽은 이름모를 꽃 한 송이가 아직 싱싱한 채 놓여 있었고, 십대들이 좋아 하는 잡지 세 권과 사탕 한 봉지, 그리고 껌 한 통이 들어 있었다. 포장지에 찍힌 우편요금을 보며, 다소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딸아이는 고마움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코끝에 꽃송이를 붙인 채 잡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국에서 부동산이 한참 오르던 시절에, 어느 대학 교수의 부인이 여동생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동생은 함께 땅을 사자고 하였다. 교수 부인이 내가 땅살 돈이 어디 있냐고 거절했더니, 동생은 자기가 돈을 빌려주겠다고 우기다시피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몇 해후에 동생에게서 1 억 5 천만원이라는 거금이 입금 된 사실을 알고 놀래서 교수 부인은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은 땅를 팔았는 데 언니 돈 5 천만원이 2 억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 돈이 왜 내거냐고 언니는 돌려 주려고 했지만, 동생은 자신의 셈법을 주장하며 끝내 받지 않았다.

얼마 전 교수님 생일에 전화를 드렸더니 , 교수님은 “ 우리 부부는 요즘 밥푸는 재미에 살아” 라고 농담을 하셨다. 정년 퇴직후에, 교수님은 이제는 서울에도 꽤 많이 늘어 난 homeless 들을 찾아 다니며 식사 대접하는 일을 하고 있고, 사모님은 일요일마다 수 천명의 교인에게 밥을 퍼주고 있다고 한다. 신사 교수님과 미모의 사모님이 길거리에서는 homeless 들에게, 교회 식당에서는 수 많은 교인들에게 밥을 퍼주는 모습을 그려보며, 혼자 미소 지어 보았다.

사랑의 뭉치는 눈뭉치가 커지듯 굴릴수록 커진다고 한다 . 우리가 받은 사랑을 셈없이 이리 저리 계속 굴려 가면, 온 세상은 하얀 눈이 가득 덮힌 사랑의 세계가 될 것이다.

2005년 1월 미주중앙일보 "여자의 세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