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미국의 대학제도

새 학년이 시작되는 9 월이 되면, 새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명문 대학들의 유치 경쟁이 시작된다. 대학들은 입학 담당 직원과 현지의 졸업생, 영상매체들을 동원해서 대대적인 홍보전을 펴는 데, 지역의 학생과 부모들을 호텔로 초청해서 갖는 대학 설명회는 대학에 진학할 자녀나 부모 모두에게 유익한 정보를 많이 제공한다.

몇 차례 설명회에 참석해 보면, 대학에서 신입생 후보들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학업에 충실하고, 과외 활동과 지역사회 봉사에 적극적이며, 리더십을 기르고, 취미 생활은 무엇이든 깊이 즐길만큼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무리한 요구같지만, 4 년 동안의 학교 생활을 충실히 할 뿐아니라 자신을 개발하고 즐기라는 훌륭한 지침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한인들이 실력이 뛰어나도 리더십이 부족해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본인의 재능이나 관심보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자녀들의 취미 생활을 정해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무엇이든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를 열심으로 개발해서 충분히 즐기라고 권고한다. 지역사회에도 관심을 갖고, 조금씩이라도 돕는 일을 생활화할 것도 충고한다.

딸아이는 4 년여 동안 이 지침대로 따르려고 애썼다. 머뭇거리고 망설일때는 엄마 아빠가 뒤에서 조금씩 밀어주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앞에 서기를 꺼려하는 딸아이를 두 주동안이나 달래고, 준비를 시켜서 신입생 학년회장에 출마하게 했다. 딸아이는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리드하고, 행사를 잘 준비하는 재주가 자신에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토론팀에 가입해서는 주말마다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대회에 참석해서 여러 사회 현안을 놓고 열띤 토론도 벌였다. 큰 병원의 응급실에서 교통 사고 환자나 총기에 다친 사람 등 응급환자들을 돕기도 하였다.

지난 4 년을 돌이켜 보면, 딸아이가 그 동안 많이 성장했음을 절감한다. 소극적인 성품으로 누구 앞에 나서기를 꺼려했던 아이가, 이제는 수천명의 학생들 앞에서 당당히 스피치를 할 만큼 되었다. 밤 늦은 시간에 피아노 앞에서 마치 속삭이듯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며 즐기기도 한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설득하는 일을 해온 덕에, 사람 사귀줄도 알고 아픈 사람 마음 다독거리는 것도 제법이다. SAT 나 AP 같은 시험 성적이 크게 뛰어나지 않았지만, 대학에서 정해준 지침대로 따르려고 애쓴 딸아이에게 소위 최고로 꼽히는 대학들에서 입학허가서를 보내왔다.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낙제생이라는 이야기가 미국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이는 미국의 대학들이 학업은 물론 리더십이 탁월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면서도 자기 여가를 즐길 줄 아는 어디서나 성공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기 때문인 듯 싶다.

2006년 1월 미주중앙일보 "여자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