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

모두가 원치 않는 그 날은 마침내 왔고, 우리의 가슴에는 아쉬움과 허전함만이 가득했습니다. 그 날은 제가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이 교회에서의 22 년간을 마감하며 평생의 목회를 은퇴하는 날이자, 후임 목회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교회를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깊이 정들었던 사랑하는 이들과의 헤어짐을 성찬식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설교 대신 행해진 이 날의 성찬식에서  목사님은 길게 늘어선 정든 교인들에게 포도주와 빵을 주고 축복하며 개별적인 석별을 나누었습니다. 그 옆에 서신 사모님은 때로는 악수로 때로는 깊은 포옹으로 교인들과 눈물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단 위에서 설교하는 목사에게  감동 받고 존경하다가도, 그들의 생활에 가까이 가면 실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강단에 가려진 인간의 약한 면이나 해서는 안 될 언행을 목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목사님과는 3 년전 교회에 등록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지만 몇 달 동안 먼발치에서 본 설교자의 모습은 때론 다소 불안하기도 했고, 설교 내용에 종종 실망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가까이서 목사님을 만나면서 40 여년의 교회 생활에서 처음 느끼는 진한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는 여러 인종이 교회 시설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한인 목회에서는 교회 옆의 조그만 2층집을 다락방이라 부르며 작은 모임의 장소로 쓰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는 중고등학생들의 성경 공부로 각 방이  그룹별로 채워집니다. 한 번은 밤 10 시가 넘어 아이들을 데리러 갔는데 아들 준민이만 다락방밖에서 기다리길레, 준민에게 누나를 찾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준민이는 2 층 구석의 방 하나가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보고는 누나와 친구들이 문을 닫아걸고 그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장난기가 동한 준민은 갑자기 마구 문을 두들기며 누나의 이름을 불러댔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온 사람은 런닝 차림의 목사님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그 골방은 목사님이 주중에 주무시며 기도하는 곳이었습니다.

주일 예배 끝무렵에 목사님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며 간절한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교인이 400 여명이 넘다보니, 교회에는 늘 중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있었고 장례식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가난하고, 나이들고, 병들은 분들에 대한 목사님의 애정과 보살핌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매주 찾아가 찬송도 부르고, 말동무도 되어주었고 간절히 기도도 해주었습니다. 우리 딸 지은이의 세 번째 수술을 앞두고 우리 부부가 예배에 참석했을 때, 목사님은 모든 교인에게 합심하여 기도할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우리 지은이가 마치 죽어가는 자기 손녀라도 되는 양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저희 교인들은 목사님의 눈물에 빛을 많이 진 사람들입니다.

2 년전,  우리 지은이가 네 차례나 병원에 입원하고 한 달여 동안 학교를 가지 못하고 누워있을 때가 저희 부부에게는 지난 17 년의 결혼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때였습니다. 어린 딸을 먼저 보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에 마음을 졸이고 있는 동안, 많은 분들이 전혀 예상치도 못 했던 방법으로 저희를 도와주었습니다. 목사님도 그 먼 씨미 밸리 병원까지 예고도 없이 여러 차례 찾아주셨습니다. 지은이가 퇴원을 하고 저희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후에, 바쁜 목사님과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욕심에 처음으로 심방을 요청하였습니다. 심방오시는 날 아침에 목사님은 전화로 어떤 형태의 심방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목사님 부부와 부담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솔직한 욕심을 말씀드렸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목사님은 저희 지역 장로님과 심방 오시려던 계획을 바꾸어서, 코리아타운 교회 사무실에서 세리토스에 있는 집으로 가셔서 사모님을 모시고, 5 번 프리웨이를 무려 2시간 반이나 운전해서 노쓰리지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사정을 잘 모르고 때를 쓴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날은 교회 골방에서 주무시지 못하고, 세리토리 집으로 가셔서 몇 시간 눈도 붙이지 못하시고 새벽 기도에 가셨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떠나시기 바로 전 주일에 목사님은 성숙한 신앙인 이라는 제목의 고별 설교에서 성숙한 신앙인은 목회자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20 여 년을 함께 한 목사가 은퇴하고 교회를 떠난다고 해서 신앙의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교회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이제 교인들의 기억에서 잊혀져야 되며, 새로 부임하는 목사님을 중심으로 교인들이 단결하여 신앙의 승리를 거둬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당분간은 오랫동안 사랑하고 정들었던 교인들과의 관계를 끊겠다고 하셨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고 만나지도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원로 목사로 추대되는 것도 거절하고, 교인이 10 여명도 되지 않는 Fresno의 조그만 교회를 도우러 가신다며, 멀리 떠나 가셨습니다.

2001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