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과 고통의 화신 Frida"

<디에고와 나>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예술에 대한 남다른 정열을 지녔던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1907 - 1954) 를 다룬 다섯 번째 영화 'Frida'가 지난 해 연말부터 상영되고 있다.  그녀의 독특한 이미지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그녀만의 매력을 다시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주말의 느긋함을 향유하려는 남편을 애교반 협박반으로 졸라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 'Frida'에는 평화라는 의미를 지닌 그녀의 이름과 달리 고통과 회한으로 가득찬  비극적인 삶이 잘 나타나고 있다. 또한 프리다의 작품들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의 배경도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있다. 주연으로 캐스팅 된 살마 헤이엑 (Salma Hayek) 은 프리다와 실제로 외모가 흡사한 배우인데, 그녀는 생애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를 이 영화에서 보였다고 한다.

마치 운명의 여신으로부터 저주의 화살을 맞고 태어난 소녀처럼 프리다는 어린 시절부터 삶의 고통을 맛보게 된다. 프리다는 일곱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절게 될 뿐만 아니라 18세 때에는 그녀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로 척추, 배, 다리, 자궁 등 온몸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프리다는 전신에 기브스를 한 채, 1 년 동안이나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고, 평생동안 30 여 차례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의사로서의 꿈을 키우던 프리다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 몸에 기브스를 한 채 침대에 엎드려서 그림을 시작하게 된다.

멕시코 벽화운동의 거장으로 일컫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로부터 그림지도를 받던 프리다는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이미 두 번의 결혼 경력이 있는 20년 연상의 디에고와 결혼을 하게 된다. 스승으로, 동료 화가로, 친구로, 공산주의 사상을 공유한 동지로 디에고는 프리다에게 대단히 소중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여자와의 성관계를 여자와 악수하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호색가 디에고는 프리다에게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많이 주게 된다. 프리다와 디에고는 서로의 작품과 재능은 사랑하고 존중하지만, 두 사람은 끊임없이 갈등한다. 디에고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프리다를 술과 담배, 약물, 그리고 다른 많은 남자들 심지어 여자들과의 성관계로 이끈다. 이러한 무절제된 생활속에서 건강이 악화된 프리다는 47세라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게 된다.

이처럼 한이 많은 생활 속에서 프리다가 자신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작품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정열이였다. 사고 후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프리다는 천장에 매달아 놓은 거울에 비추인 자신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프리다의 작품에는 자기 자신을 그린 자화상이 유난히 많은 데, 사고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과 부자유 속에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자신을 관찰하고 표현하고자 하였다. 프리다는 자화상들을 통하여 자신의 삶과 내면세계를 절실히 드러내고 있다.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사고속에 자유분방한 생활을 영위한 프리다였지만 그녀 역시 가정에 대한 전통적인 의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특히 남편과 아기에 대한 갈망은 그녀의 작품속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바람둥이 남편에 대한 체념과 미련이라는 이중적인 생각은 '디에고와 나'라는 작품속에 잘 표현되고 있다. 풀어 헤쳐진 머리와 눈물맺힌 커다란 눈으로 묘사된 자신의 얼굴과 함께 자신의 이마위에 그려진 디에고의 덤덤한 얼굴은 남편에 대한 그녀의 복합적인 사고체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비록 바람둥이인 남편이였지만 자신의 아기를 낳아주고 싶었던 프리다는 세 번의 유산을 통해 또하나의 절망을 맛보게 된다. 유산이 여자에게 주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함께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여인의 절망을 '헨리포드 병원'과 '프리다와 유산'과 같은 작품속에서 그려내고 있다.


<다친 사슴>

비극으로 점철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회한의 눈물을 흘렸지만, 그녀는  삶에 대한 강한 의욕과 의지를 작품속에 정열적으로 불태웠다. 그녀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는 '다친 사슴'에서는 고통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삶의 의지를 잘 읽을 수 있다. 사슴의 몸을 빌린 프리다는 비록 여러 개의 화살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지만 그녀의 눈은 투명하고도 강렬한 시선을 품어 내고 있다.

작품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표현하고자 했던 프리다는 생전에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졌고 많은 호평을 받았다.  특히, 피카소, 칸딘스키, 뒤상등은 그녀의 초현실주의적 작품에 각별한 관심과 함께 찬사를 보냈다.  이러한 유럽의 평가와 달리, 프리다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유럽의 모더니즘의 영향이 아닌 멕시코의 토속적인 것에 뿌리를 둔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으로 해석하였다.

프리다는 생전이나 사후에도 화가로서보다는 20세기 멕시코의 대표적 화가의 한사람인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정도로만 기억되어 왔다.  1970년대 여권신장운동이 대두되면서 그녀의 존재가 재평가되고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삶과 작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많은 책과 영화가 제작되어 지고 있다. 이제 그녀는 20세기 멕시코의 최고 여류화가로 칭송받으며 그녀의 일부 작품들은 멕시코의 국보로 지정되었고, 많은 작품들이 수 백만불을 호가하고 있다. 삶의 고뇌속에서 헤매이던 프리다는 그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는 듯이 생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2003 년 2월, 미주중앙일보 "예술을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