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끝없는 하늘을 세워놓고 붓을 움직이다 문득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10년 전 첫 번째 개인전을 했을 때, 기대와는 달리 단 한 점의 작품도 팔리지 않아 실망하고 있었다. 그 때에 이해하지도 못하는 그림을 구입해 주신 분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었다. 얼마 전 목사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면서 옛날 일을 이야기했다. 이제는 팔십이 넘으신 노 목사님께서 "도 강화백에게 물감 값을 투자했지" 라고 말씀하시면서 크게 웃으셨다. 이 길을 가면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림 한 점의 힘. 그때 그 사랑의 힘이 얼마나 더 커질까 궁금하다.

특별히 격려해 주시며 내가 쉬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도와주신 분들은 너무 많다. 서울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할 때 그 곳 갤러리 관장이 내게 여러 도움을 주었다. 첫 인상은 쌀쌀하고 위엄이 풍기는 분이었지만, 알고 보니 마음도 따뜻하고 자상한 분이었다. 미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가끔 안부 전화를 하면서 언젠가는 L.A.에서 한 잔 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 분은 이제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는 전도사님이고, 오는 시월에는 목사님으로 호칭도 바뀐다.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관을 뛰어 넘기 쉬운 화가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교회를 시작하였는데, 예배 장소는 갤러리란다. 매우 의미있는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오월 스승의 날을 앞두고 생각나는 또 한 분이 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끝으로 대학으로 가신 고3때 담임 선생님, 늘 기억하며 24년이 지났다.  우리들의 앞날을 위해 기도해 주셨던 선생님. 그림 그리랴 공부하랴 힘들었던 그 때, 안쓰러워하시던 담임 선생님을 얼마 전에 찾았다. 인터넷의 위력이었다. 스크린에 떠오른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 나는 당장 아래층으로 내려가 전화를 했다. 금방 기억하시는 선생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나는 소리없이 언제나 격려해 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났다. 살면서 이렇게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좋은 스승이 곁에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20 년전 남편을 따라 미국에 오기 얼마 전에 인사차 대학 때 나를 아껴주시던 교수님을 찾아 뵈었다. 교수님은 10년 동안만 붓을 놓지 말아라, 그러면 된다" 하셨다.  그로부터 10년 후, 미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 선생님의 그 말씀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그때 10년, 지금도 10년 앞으로도 계속 10년이 될 것이다. 언제나 봄이 돌아오듯이 그 시간들이 모인 후에 어떤 또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해본다.

창 밖의 하늘이 푸르다. 가슴을 쭉 펴고 오늘도 하늘같은 캔버스 앞에서 붓을 움직이고 있다. 

2003 년 5 월   미주중앙일보  "예술을 따라서"